‘만나는 걸 미루기만 했던 게 너무 미안해, 기억할게, 천국에서 만나자.’ ‘사랑하는 내 친구 네 예쁜 얼굴 절대 잊지 않을게.’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 전남 무안공항 활주로 옆 철조망. 사고 현장에서 500m, 가장 가까운 곳이다. 철조망 너머로 완전히 불타버린 기체가 보였다.
참사 나흘째인 1일 오후, 이곳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손 편지 19장이 매달려 있었다. 전날만 해도 3장밖에 없었는데 하루 새 철조망 곳곳에 내걸렸다. 그 아래엔 하얀 국화와 김밥, 콜라, 황태포, 사과, 초코파이, 소주, 커피 등이 놓였다. 희생자의 가족, 친구 등이 남긴 손 편지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 해 질 녘 쪽지는 바람에 흔들려 물결처럼 보였다. 2022년 ‘핼러윈 참사’ 때도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 지하철역 출구에 국화와 손 편지가 가득 놓였었다.
철조망 너머 사고 현장을 멍하니 쳐다보던 김정민(58·전남 목포)씨는 “얼마나 아팠을까, 제 마음도 너무 아프다”고 했다. 그는 철조망 아래에 준비해 온 국화 한 송이를 내려놨다. 돌아서는 김씨 눈에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에게 한없이 소중한 이들, 원한과 슬픔을 나눠 가질 터이니, 부디 좋은 곳으로 인도하소서’ ‘이승에서 못다 이룬 꿈을 그곳에서라도 꼭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갈게’라고 쓴 쪽지도 보였다. 저마다 사연은 달랐지만 쪽지마다 펜으로 꾹꾹 눌러쓴 흔적이 보였다.
광주광역시에서 왔다는 추모객은 “새해 첫날인데도 슬픔에 빠져 있을 유가족들이 안타까워서 찾았다”고 했다. 전남 순천에서 온 추모객은 “멀리서 검게 그을린 비행기 잔해만 봤는데도 희생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눈물이 난다”고 했다.
사고 당시 상황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기장과 승무원들을 애도하는 쪽지도 속속 걸리기 시작했다. 사고기는 새 떼와 충돌한 뒤 ‘동체 착륙’을 시도했지만 활주로 너머에 있던 콘크리트 둔덕과 충돌한 뒤 폭발했다.
사고기 기장의 형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매단 손 편지도 보였다. ‘외로이 사투를 벌였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너는 이미 너무나 훌륭했고 충분히 잘했으니 이젠 따뜻한 곳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형이’. 이 쪽지 아래에는 소주 2병과 김밥 2줄, 과자 1봉지, 우유 1개, 핫팩 1개가 놓여 있었다.
유족들이 머무는 무안공항 대합실 계단에는 난간을 따라 쪽지 1000여 장이 붙었다. 이날 아침에 300여 장이 붙어 있었는데 하루 새 난간을 꽉 채웠다. ‘수다쟁이 우리 엄마, 거기서 매일 우리 이야기하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만 보냈으면 좋겠어’ ‘언니야 어디에 있어? 언니가 있는 그곳이 평안했으면, 더는 안 아팠으면…’ ‘사랑하는 이모들 새해 복 많이 받아. 함께하는 새해는 아니지만 항상 함께하니까’ ‘어찌하여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179명의 고귀한 목숨을 보내야 하는 시련을’이라고 쓴 쪽지가 눈에 띄었다.
무안공항 1층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에는 추모객들이 몰렸다. 대기 줄이 600m까지 이어졌다. 공항 직원들은 ‘질서를 유지해 주세요’라고 쓴 손 팻말을 들고 추모객을 안내했다. 추모객들이 몰리자 무안군은 ‘애도를 표하고자 하는 추모객은 무안스포츠파크 분향소로 방문해 주시길 바란다’는 안전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전남도는 공항 근처 무안스포츠파크에도 분향소를 운영하고 있다.
쌍둥이 아들, 아내와 함께 분향소를 찾은 임정관(46)씨는 “우리 아들만 한 아이들도 못 돌아왔다니 눈물이 난다”며 “다음 생에서는 아프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분향소를 찾았다”고 했다. 임씨의 아들 아준·여준(9)군은 ‘행복하게 하늘나라로 가셔 달라’는 손 편지를 써 합동 분향소 앞 계단에 붙였다.
이날 오전 유족들은 사고 후 처음 활주로 현장을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산산조각이 난 기체 앞에 과일과 떡국 등을 놓고 추모식을 열었다. 유족들은 활주로 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