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상황판을 만든 이는 스스로를 ‘디지털노마드 개발자’라고 소개하는 주은진(30)-권영재(35) 부부. 이들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옮겨 다니며 일하는 디지털노마드족(族) 사이에서 성지(聖地)로 통하는 태국 치앙마이에 머물다 이번 사태를 맞았다. 최근 2주간 숙소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코로나 상황판 개발 및 정보 업데이트에 열중하고 있는 이 부부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카카오 이모티콘 작가와 스타트업 개발자
“지난 설 연휴 때 뉴스를 통해 처음 접했다. 그 후로 코로나 상황판을 하루 종일 개발하느라 숙소와 가까운 식당을 제외하고는 거의 나가지 않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한 치앙마이 현지 분위기는 잘 모른다.”
- 코로나 상황판을 ‘뚝딱’ 만들어냈다. 어려운 개발은 아닌가.
“온라인 사이트를 만드는 것 자체는 기술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다. 대학에서 개발 관련 전공을 하지 않더라도 따로 열심히 공부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많은 사용자가 갑자기 접속해도 장애 없이 안정적으로 서비스하면서 서버 비용이 최소화되도록 설계하는 것은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한다. 또 사용자가 많은 정보를 쉽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화면을 구성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는 현직 개발자로서 경력이 많은 도움이 됐다.”
- 전 세계에서 발표되는 각종 자료를 가지고 수작업으로 업데이트한다는데….
“공신력 있는 보도자료를 자동 수집해 내용을 직접 검증한 뒤 수동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최근 질병관리본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정보만 다루는 새로운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대시보드도 있고 확진자 동선도 잘 표시돼 있어 정보를 가져오기가 훨씬 편해졌다. 해외 사이트 중에서는 싱가포르 보건부(MOH)가 정보를 잘 정리하고 있다.”
-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하나.
“주은진은 풀타임으로 데이터 업데이트와 사용자 인터페이스(UI) 개선, 그리고 데이터 정제 작업을 거의 하루 종일 한다. 권영재는 회사 업무 시간에는 회사 일을 하고, 그 외 나머지 시간에 사이트 개선을 위해 밤늦게까지 노력하고 있다.”
주씨는 IT(정보기술) 개발자이자 웹툰 작가. KAIST(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과 재학 시절 ‘카이승트’라는 웹툰을 그렸고, 대학 졸업 후 5년간 네이버 라인(LINE)에서 라인뮤직 iOS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다. 현재는 카카오 이모티콘 ‘나리의 언어생활’ 작가이면서 ‘둔딘스튜디오’(dundinstudio.com)라는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웹툰을 꾸준히 게재하면서 유틸리티 앱을 개발하고 있기도 하다. 권씨는 해외여행 서비스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스퀘어랩에서 ‘카이트(Kyte)’ 앱 개발자로 일한다.
제주→치앙마이→파리…“어디서 일하는지는 중요치 않아”
- 최근 특히 IT업계에서 디지털노마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IT 분야 스타트업에서 원격근무가 일반화됐나.
“풀타임으로 재택근무가 가능한 회사는 일반적이지 않지만, 최근 들어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다. 대기업 중에서도 주 1회, 또는 월 1회에 한해 재택근무하는 곳이 꽤 있다고 들었다. 스퀘어랩에는 개발자가 작성한 코드를 온라인으로 팀원들과 엄격하게 리뷰하는 문화가 있다. 또 사내 메신저 등을 통해 긴밀히 소통한다. 따라서 꼭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지 않더라도 서로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우리 회사에서 ‘어디서 일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함께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 생기면 화상통화를 한다.”(권영재)
- 디지털노마드 생활을 추구하는 이유는 뭔가.
“우리 부부는 개발 일을 좋아하고, 또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며 새로운 나라를 여행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결혼 전부터 ‘다양한 곳에서 살아보며 개발하자’는 꿈을 가졌다. IT 개발자 특성상 근무 형태가 자유로운 편이다 보니 감사하게도 꿈을 이루게 됐다.
여행으로 짧게 해외 도시를 방문하면 일정이 촉박해 유명한 곳 위주로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한 달가량 살면 현지인이 많이 가는 식당이나 동네 공원을 하나하나 가보면서 도시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다. 그 나라의 언어, 음식, 문화와 역사를 자연스럽게 익혀나가는 것은 정말 즐거운 경험이다.”
- 치앙마이 한 달 살이, 해보니 어떤가.
“치앙마이는 낮은 물가와 빠른 인터넷 속도, 그리고 선선한 날씨로 디지털노마드를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도시다. 그러한 치앙마이가 궁금하기도 하고, 겨울에 따뜻한 지역에서 살고 싶어 왔다. 미세먼지가 약간 있어 아쉽지만, 음식이 맛있고 저렴한 점이 정말 마음에 든다. 숙소 가까운 음식점에서 40바트(약 1500원)면 맛있는 팟타이를 먹을 수 있다. 무척 맛있어서 거의 매일 먹는다. 치앙마이 한 달 생활비는 월세 70만 원, 식비 40만 원가량이다. 더 저렴한 숙소도 많지만, 우리 부부는 주로 숙소에서 일하기 때문에 4인 테이블이 있는 곳을 구하느라 돈이 좀 더 들었다. 태국 음식 위주로 먹는다면 둘이 한 끼를 든든히 먹어도 1만 원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
- 치앙마이 생활에 대해 조언한다면.
“화전(火田)으로 인한 미세먼지, 혹서기, 우기를 모두 피한 11월에서 2월 중순까지가 치앙마이 한 달 살이에 가장 좋은 시즌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게 좋다. 액티비티로는 ‘쿠킹 클래스’를 추천한다. 우리 부부는 차로 한 시간 떨어진 농장에 가 밭에서 직접 생강, 애플민트, 레몬그라스를 수확해 요리하는 특별한 경험을 누렸다. 태국 음식은 향신료와 허브를 정말 많이 사용하는데, 쿠킹 클래스 덕분에 식재료 관련 지식이 많아져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나 식료품 장을 볼 때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 사무실을 떠나 일하는 게 불편하진 않나.
“우리 부부는 집돌이, 집순이라 숙소에서 잠옷 입고 개발하는 게 더 편하다. 하지만 최근 며칠 동안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코로나 상황판 개발만 하다 보니 우리가 해외에 나와 살고 있는 게 맞나 하는 느낌이 든다.”
- 또 다른 도시로 갈 계획이 있나.
“조만간 한국으로 돌아가 몇 달 지낸 뒤 프랑스 파리로 갈 생각이다. 대학생 때 교환학생으로 6개월간 있던 곳이라 다시 가보고 싶고, 남편은 아직 안 가봤기 때문에 목적지로 정했다. 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진정됐으면 좋겠다.”(주은진)
“코로나 확산 막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 되기를”
-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자진해 코로나 상황판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우리 부부가 개발자다 보니 다양한 데이터를 정제해 규칙을 부여하고, 반복되는 작업을 자동화하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뉴스와 보도자료를 접하면서 데이터를 가공해 보여주는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은 분이 사이트를 방문해 보람을 느낀다. 이 일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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