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후 경기 과천시 공수처에서 조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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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됐어요?"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로 달려왔다. 지난 15일 아침,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가 임박했다는 뉴스를 들은 뒤 등교한 뒤다. 방학 중 방과 후 수업이 한창인데, 일과 중엔 스마트폰을 켤 수 없어 교무실에 확인하러 왔던 거다. 그땐 모든 방송과 인터넷에서 생중계 중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체포된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어서 아이들도 눈을 떼지 못했다.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한 공수처·경찰과 대통령 경호처 간 유혈 충돌이 벌어질까 두려워 그들도 손에 땀을 쥐며 지켜봤다고 했다. 그 어떤 인터넷 게임도 이보다 더 흥미진진할 순 없다고 눙치기도 했다.
윤 대통령 체포 작전은 '싱겁게' 끝났다. 1차 집행 때 성벽처럼 스크럼을 짜고 막아섰던 경호관들도 순순히 길을 텄고, 대통령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부르대던 시위대의 저항도 힘을 쓰지 못했다. 체포되는 그 순간까지도 지지 세력을 선동하려는 윤 대통령의 녹화 연설은 결기는커녕 철부지의 투정처럼 느껴져 언뜻 가엾기까지 했다.
윤석열이 오염시킨 '공정과 상식'이라는 말
▲ 2021년 6월 29일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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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은 이 짧은 외마디 질문은 윤 대통령이 받게 될 처벌에 관한 게 아니었다. 법정에서 '내란 수괴' 혐의가 확정될 경우, 최소 무기형을 선고받게 된다는 건 이미 아이들에게도 상식이다. 우리나라가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여서, 윤 대통령이 그 '혜택'을 누리게 된 셈이라며 눈을 흘기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지 궁금해하는 것도 아니다. '12.3 내란 사태'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며 윤 대통령을 결사옹위하던 이들이 다시 집권하는 일은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면서도 '이재명 대통령'을 떼 놓은 당상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되레 윤 대통령에게 그렇게 데었는데도 또다시 대통령 타령이냐며 힐난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시선은 기성세대처럼 차기 대선에 머물러있지 않았다. 대통령 한 명 잘못 뽑아 온 나라가 엉망진창이 돼버렸다면서도, 대통령을 잘 뽑으면 저절로 우리나라가 발전할 거라는 기대도 위험하다고 강조하는 대견한 아이도 있다. 대선이 무슨 '아이돌 팬 투표'냐고 묻는 상황이다.
"이제 과거와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의 입에서조차 '눈 떠보니 후진국'이라는 말이 일상화됐다. 얼마 전까지 'K-Culture'가 벌어놓은 돈을 '윤석열'이 다 까먹었다는 조롱이 유행하기도 했단다. 부모님조차 요즘처럼 대한민국 국민인 게 창피했던 적이 없다고 토로하시며 아예 TV를 끊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한 아이는 윤 대통령의 탄핵을 우리 현대사의 시대 구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전'과 '윤석열 후'는 확연히 달라져야 한다면 환골탈태라는 표현까지 썼다.
또한 지난 2년 반 동안 현 정부의 숱한 '헛발질'을 통해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입을 모았다. '12.3 내란 사태'는 그 정점이었을 뿐, 그게 전부인 양 여겨선 안 된다는 거다.
우선, 공정과 상식의 의미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선거 공약으로 차용한 이 둘은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민망한 단어가 됐다. 누구든 '공정과 상식' 하면 윤석열을 떠올리고, 그 가치를 강조할수록 극우 세력으로 오해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정 대신 비슷한 의미의 공평을 사용하고, 상식적이라는 표현도 가급적 삼가는 모양새다. "상식적으로 판단하라"는 일상적인 조언을 "윤석열처럼 하라는 거냐"며 말장난을 치기도 한다. 애꿎게도 공정과 상식이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윤 대통령으로 인해 욕을 먹고 있는 셈이다.
지난 2년 반은 '불공정과 몰상식의 시대'였다는 걸 아이들도 직감하고 있다. 자신과 가족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비판 세력에게는 서릿발 칼날을 들이댄 윤 대통령의 행태를 모르지 않는다. 공산 전체주의, 종북주사파, 반국가 세력 등 온갖 혐오 발언을 쏟아낸 대통령 모습에 아이들도 어리둥절해 했다.
전두환 단죄 실패, 우리 현대사의 최대 치욕
▲ 1997년 12월 22일 12.12및 5.18 사건과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수감중이던 전두환이 정부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 측근들에 둘러싸여 안양교도소에서 출감하고 있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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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두 쪽 나도 사면은 안 돼요."
아이들은 벌써부터 '훗날'을 걱정했다. 체포된 윤 대통령이 조만간 구속되고, 형사 재판 절차를 거쳐 중형이 내려지리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아이들의 관심은 그다음이었다. 범죄 혐의로 기소되고 형이 확정된 역대 대통령 중에 제대로 단죄된 경우가 있었는지 모두가 반문했다.
한결같이 전두환의 '전례'를 들이댔다. 교과서에서도 비교적 상세히 언급되어 있는 데다 그가 사망했을 당시 다시 한번 화제가 되어 아이들의 머릿속에도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 전두환이 법적으로 단죄 받지 않은 게 우리 현대사의 최대 치욕이라고 강조하는 아이도 있다.
심지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역정 중 최대 실책으로 규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민정부를 표방했던 김영삼 정부는 1995년 말 12·12 군사 반란 및 5·17 내란 혐의 등으로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그들을 불기소했다.
하지만 5.18 특별법을 통해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공소시효 정지 규정까지 만들어졌고, 재수사를 통해 전두환은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후 대법원에서 확정됐는데, 당시 적시된 죄목중 하나가 '반란 수괴'였다. 지금 국회가 발의한 특검법상 윤 대통령의 혐의와 동일하다.
그러나 구속수감이 된 지 채 2년도 안 되어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전격 사면 결정이 내려졌다. 외견상 자신이 처벌한 범죄자를 스스로 풀어준 셈이지만,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던 김대중의 사면 건의가 있었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동서 화합을 통한 국민 대통합'이었다.
5.18 당시 계엄군에 의해 사형 선고까지 받은 김대중은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하며 전두환을 용서했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단 한 마디 사과도 남기지 않았다. 선의가 무참히 짓밟힌 것이다. 윤석열에 의해 공정과 상식이 부정당했듯, 전두환에 의해 용서와 사과가 조롱당했다.
국민 대통합이라는 명분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온존한 지역감정은 해소되지 않았고, 세대별, 성별, 이념 갈등에다 경제적 양극화까지 더해져 대한민국은 만신창이가 됐다. 반사이익으로 집권하고 갈라치기로 국정을 운영한 윤 대통령의 '반정치' 행태는 시나브로 극단화된 우리 사회의 거울인지도 모른다.
"전두환 사면을 건의한 덕에 김대중 대통령이 큰 정치인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오판으로 정의와 법치주의가 훼손되었으니 그 과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한 아이는 화합과 국민 대통합이라는 말은 허울에 불과하다며, 우리 사회에 정의와 법치주의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의와 법치주의가 훼손된 화합과 통합은 한낱 정치적 야합에 불과하다는 거다.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고 또다시 윤석열을 사면한다면 전두환의 '전례'보다 훨씬 큰 해악을 끼치게 될 거라 우려했다.
사족: 한 아이는 윤 대통령이 체포된 직후 자신의 카톡 상태 메시지를 이렇게 바꿨다고 했다. '어제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 소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남긴 금언인데, 마치 우리나라의 정치인들 들으라고 하는 말 같다며 웃었다.